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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디자인 뺀 디자인 스튜디오 이야기

원고 개요

인트로)

나는 누구인지
나는 왜 스튜디오를 만들고자 했는지
나는 왜 1인 스튜디오를 만들고자 했는지


디자인 얘기를 뺀 디자인 스튜디오 이야기.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필자가 누구인지를 먼저 이야기하려 한다.
앞으로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당신과 나는 이렇게 마주보게 될텐데, 쌩판 모르는 사람이 뭐라뭐라 계속 떠드는 것 보다
그래도 조금은 필자에 대해서 알게 된 상태에서 시작한다면 더 잘 이해할 수도 있을것이고, 보다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유다.
사실 필자도 본격적으로 스튜디오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기 때문에 디자인스튜디오에 대해서 무언가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많이 민망하지만, 신병에게 수건 접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말년병장이 아니라 몇 주 먼저 들어온 선임인 것처럼(말년병장이 신병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군생활의 마음가짐과 철학, 세계의 평화 등 뜬구름잡는 이야기가 아닌가.), 필자가 더 짬이 차서 보다 거시적인 시각으로 디자인 스튜디오 이야기를 풀만한 내공이 생기기 전에, 근시안 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의 실제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를 몇 년 뒤에 보면 얼마나 화끈거릴까...

이 글의 목적은 바로 그것이다. 필자보다 조금 덜 아는 당신에게 조금 더 아는 필자가 그냥 조금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먼저 스튜디오를 차리고 맨땅에 헤딩하며 배워간 것들을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후배에게 조금 아는 척 하는 기분.
그럼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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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타요?"
충무로에서 돌아오자 마자 신경질적으로 울리던 전화를 받던 녀석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타라니.. 그렇게 몇번의 컨펌을 거치고 필름도 몇번을 확인했건만, 도대체 어디에 오타가 있었단 말인가!

"상품...제목이요?"
파랗게 질린 녀석의 얼굴을 보며 난 재빨리 샘플을 확인했다. 맙소사.. 그 누구도 감히 틀렸을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그 상자에서 가장 큰 폰트로 들어간 제목이 틀릴 줄이야!!

"망했다... 영덕대..개....라니...."

상대 거래처에선 재 제작도 필요없으니 전량 회수해가라고 했단다. 영덕게가 들어가야 할 박스 1,000개. 충무로를 무대로 크고작은 사고를 많이 일으키며 겨우 걸음마를 떼려던 우리에게 이번 사고는 너무나 컸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작은글씨도 아니고 상품제목에 오타를 내버렸으니 그것도 '게'를 '개'로 아예 종자를 바꿔버렸으니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우린 그 후 몇 개월간을 채무를 갚기 위해 기계처럼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채무를 다 털자마자 충무로를 떠나기로 다짐했다. 처음엔 우리 나름의 컨텐츠를 개발해서 캐릭터 사업도 하고 책도 만들고 어쩌고 저쩌고 꿈이 컸었는데, 무모했던 우리의 나름 디자인스튜디오 도전은 그렇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 엄청난 공부와 교훈과 상한 몸과 마음을 안고...

20대 중반. 나의 청춘은 한여름 충무로의 햇살만큼 뜨겁고 무더웠다. 그냥 마음만 가지고 시작했던 첫번째 사업은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는 사실과 '준비 없이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체험하게 해주었다. 디자인을 전공한 한 친구와 젊은 혈기만을 가지고 충무로를 기반으로 하는 인쇄기획사를 차린 우리는 타 업체와는 차별화되는 전략으로 젊음의 패기와 저렴한 제작비를 내세우며 사업을 시작했다. 낮에는 충무로를 뛰어다니며 일을 구하고 공임비를 아끼기 위해 직접 손수레에 인쇄물을 싣고, 코팅집으로, 재단집으로 배달을 다니고, 밤엔 사무실에 돌아와 쿽을 켜놓고 작업을 하고... 그때 우린 참 치열했었다. 그렇게 나름 열심히 했었는데 개념도 없고 요령도 없고 수완도 없고 정신마저 없던 우리는 마치 그게 인쇄의 한 과정인냥 당연히 인쇄사고, 배달사고를 번번히 당했고 급기야는 서두에 회상한 에피소드와 유사한 상황도 몇차례 겪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끄럽고 민망하기도 한 일인데, 결국 다시 돌고 돌아 지금도 내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는게 신기할 뿐이다. 

첫 사업에 실패한 뒤 난 모 사단법인에 입사를 했다. 그곳에선 얌전히 주어진 일에만 최선을 다하려고 했는데 비영리 사단법인의 특성상 적은 인원이 다양한 일을 처리해야 했고 그나마 경험이 있던 내가 홍보물을 비롯한 각종 인쇄물 제작을 맡아 하게 되면서 이번에는 클라이언트의 입장으로 충무로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마치 은퇴한 검객이 저녁먹으려고 당근썰다가 자기도 모르게 잊고 있던 검법의 초식을 펼치고 내친김에 사부님의 원수를 찾아가 복수하는 심정처럼 다시 이 일에 손을 대고 싶어졌다. 아주 오래전에 가졌던, 잠시 잊고 도망쳤었던 마음 - 나의 목소리를, 혹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만들어서 전해주는 일. 그 일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졌다. 이게 옳은지에 대해 아주 많이 고민하고 다짐했다. 이번엔 다른 실수는 할 지언정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말자. 그리고 기왕 할거면 좀 더 잘하자. 그러기 위해 철지히 준비를 하고 시작하자. 그래서 난 스물일곱의 나이에 모 디자인 학교에 들어가서 제대로 된 디자인공부를 시작했다. 
 
 학생으로 다시 돌아간 나에게 가장 의미있는 말은 "디자인은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이 아니에요. 실수하면 어때요? 학생일때 해보고 싶은 것 마음껏 해봐요" 라는 (내가 너무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뭔가 이루고 찾아뵈려고 아직 엄두도 못내고 있는)한 교수님의 이야기었다. 막상 제대로 공부를 시작하고 디자인을 '겪어보니',디자인이라는 것은 정답이 없었다. 한 시대를 끌어가는 유행,성향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것만이 좋은 디자인이고 정답이라는 의견에는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많은 훈련과 연습을 통해 무엇이 어색하지 않고 좋아보이는지는 대강 구분할 수 있다고 해도, 한편으론 이게 다가 아닌데..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들은 교수님의 이야기는 이후 나의 학교생활에 튼튼한 목적이 되어주었고 결국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교수님 말씀처럼 정말 내가 하고싶은 걸 했다. 과제를 내밀었을 때 교수님과 동기들의 표정은 복잡했지만, 작업을 하면서 내가 즐거웠으면 점수를 어떻게 받던 신경쓰지 않았다(장학금 신청하기 전까지). 마지막 졸업프로젝트를 할때까지 그 마음은 그대로. 그래서 지금 학교에서 했던 작업들을 훑어보면 완성도는 형편없지만 개인적으로 즐거웠던 작업들이 많았었다. 그렇게 내가 하고 싶던 것들을 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알게 되자, 나는 계속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취업보다 스튜디오를 만드는 쪽으로 마음을 굳힐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직장생활이란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분명히 필요하다. 직장생활을 통해 일이 돌아가는 시스템을 배울 수 있고,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울 수 있으며, 나중에 다른 일을 도모할 수 있는 유형의 재산과 거래처 혹은 동지가 될 수 있는 무형의 재산도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단호히 이야기 할 수 있다. 스스로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딘가에 속한 아무개로서 어딘가의 커리어를 쌓아주는 것보다 보다 주체적으로 자기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보시라. 물론 이때 필요한 준비라는 것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지만 막상 덤벼보면 그렇게 어려운 것만도 아니다. (이 준비라는 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 하기로 하자.)
 
 우리의 인생은 길어보이지만 생각보다 길지 않다. 그리고 바로 한 시간 뒤에 일어날 일도 우리는 알 수 없다.
바로 내일 당신이 죽는다고 치자. 어딘가에 속해서 누군가가 시킨 일을 하며 마지막 하루를 보낼 것인가, 주체적으로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마지막 하루를 보낼 것인가.  무모해보이지만, 안정된 삶에 대한 기준과 삶의 목적의식을 바꾼다면 우리의 삶도 바뀔 수 있다. 이 다음부터 진짜로 구체적인 이야기가 시작될텐데, 우리가 다시 언제 만나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동안 한번 생각해보기로 하자. 디자인은 먹고 사는 일은 되어도 죽고 사는 일은 아니다. 죽고 사는 일은 당신의 꿈,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당신의 꿈은 직장인인가?
아니면 디자이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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